검찰 399명 입건…다시 돌아본 4월 16일 그날_인터넷 그림으로 돈 벌기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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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세월호 참사 이후 6개월 가까이 진행한 수사 결과를 6일 발표했다. 현재까지 모두 399명이 입건돼 이 중 154명이 구속됐다. 여기에는 해운업계 전반의 비리와 관련한 269명(88명 구속)이 포함됐다. 참사의 여파를 짐작하게 하는 대규모 사법처리다. 국민적 공분을 상기시킨 검찰 수사와 막바지를 향하는 승무원 15명에 대한 재판에서 드러난 그날의 퍼즐을 다시 맞춰봤다. ◇ 조타 미숙·복원력 약화로 속절없이 기울어 지난 4월 15일 오후 6시 30분 출항 예정이었던 세월호는 안개로 2시간 30분가량 지연 출항했다.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등 승객과 승무원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를 향해 출발했다. 이튿날 오전 8시 48분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부근 해상에서 19노트 속도로 운항하던 세월호는 선체가 왼쪽으로 30도가량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조타수가 오른쪽 선회를 시도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당황해 15도 이상 조타기를 급격히 돌린 게 원인인 것으로 조사됐다. 조타수는 왼쪽으로 조타기를 돌렸다고 주장하지만, 선회 방향으로 급격히 조타해 배가 기울게 하고 엉성하게 고정된 화물이 풀리면서 원심력이 작용, 기울기를 가속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세월호는 복원력이 약해 5도 이상 조타하면 위험한 배였다. 조타수는 지난해 12월에도 실수를 해 입출항 시 조타를 금지당할 만큼 미숙했다. 해고나 세월호의 쌍둥이 여객선인 오하마나호로 이직이 거론될 정도였다. 인천-제주 하행 구간에서 맹골수도 운항 경력이 없는 3등 항해사와 미숙한 조타수에게 운항을 맡기고 선장은 침실에 있었다. 엔진이 정지된 세월호는 조류의 영향을 받아 오른쪽으로 타원형을 그리며 흘러갔다. 단원고 2학년 최덕하(사망)군은 오전 8시 52분 119에 처음으로 신고했다. ◇ 운항은 미숙·탈출은 능숙 '무책임한 승무원' 각자 선실에 있던 선원 8명은 조타실에 모였다. 1등 항해사는 오전 8시 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구조를 요청했다. 선장은 8시 58분 2등 항해사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지시하고 2등 항해사는 방송시스템 전원 버튼을 누르고 방송을 시도했지만, 비상 버튼을 누르지 않아 선내 방송은 이뤄지지 않았다. 2등 항해사는 사무장, 매니저에게 침몰 상황은 알리지 않은 채 '선내 대기' 방송을 하도록 했다. 조타실에 있던 승무원 8명은 오전 9시 제주 VTS로부터 퇴선 준비를 하라는 교신을 듣고도 승객들에게 준비 안내를 하지 않았다. 오전 9시 13분, 21분, 23분 인근에 구조 선박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교신도, 24분 "승객들에게 구명동의와 두꺼운 옷을 입도록 조치하라"는 교신도, 25분 "선장이 판단해서 인명 탈출시키라"는 교신도 묵살했다. 오전 9시 34분 세월호의 침수한계선인 D데크(1층)까지 물이 차오르자 승무원들은 3분 뒤 교신을 끊었다. 검찰은 탈출 시점에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관장 등 기관부 승무원 7명은 3층 기관부 선실 앞 복도로 모였다. 기관장과 1등 기관사는 해경의 구조를 기다리며 캔맥주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기관장은 부인했지만 구조를 기다리면서 기관장이 담배를 피웠다는 진술도 나왔다. 일부는 휴대전화를 빌려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하기도 했다. 배가 기울면서 추락한 조리부 직원 2명(모두 사망)은 외면했다. 일부 기관부 직원은 바다로 뛰어내리기 쉽도록 배가 기울기를 기다렸다는 믿기 어려운 진술을 하기도 했다. 그 사이 조타실, 3층 기관부 선실에 있던 승무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해경 123정에 오전 9시 39분과 46분에 나눠 탔다. ◇ 4월 16일에 멈춘 유가족의 시간…10명은 아직 실종상태 선체가 55.4도 기울었던 것으로 추정된 오전 9시 41분 한 승객은 "아 진짜 보고싶어 ㅜㅜ 엄마 ㅜㅜ, 진짜 무서워 ㅜㅜㅜ, 창문 바로 앞에 컨테이너 떠내려가고 있어, 방송도 안해줘, 걍(그냥) 가만히만 있으래"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공포에 떨던 승객들은 오전 10시 17분 배가 기운 지 29분 만에 전복된 세월호와 함께 바다로 가라앉았다. 이들을 팽개치고 탈출한 승무원 가운데 "배 안에 학생(승객)이 있다", "승무원이니 배에 남아서 구조활동을 돕겠다"고 해경에게 말한 이는 없었다. 해경 123정, 구조 헬기에 탄 해양경찰관들은 "승객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도착 전에 모두 구조된 줄 알았다"는 변명만 늘어놨다. 현장 지휘의 전권을 쥐고 있던 123정 정장은 불구속 기소됐다. 현장 지휘관에게 형사 책임을 물은 것은 최초라고 검찰은 밝혔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된 것도 사상 처음이다. 재판 과정에서 진술권을 얻은 한 유가족은 "우리에게는 매일이 4월 16일"이라며 자식을 잃은 슬픔을 대변했다. 이날의 참사로 단원고 학생 245명을 포함해 승객 등 294명이 숨졌다. 단원고 학생 5명 등 10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